은.../길을 찾아서..

통영을 다녀오다..한산도ㆍ미륵산케이블카

임미경 2010. 6. 13. 15:51






굽이굽이 에스자로 돌아돌아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다. 제승당으로 오르는 대첩문 바로 앞에 우물이 있다. 대첩문 밀랍인형이 꼭 사람같아 순간적으로 착각도 했다. 제승당으로 오르는 길 계단으로 올라 충무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제승당 경내다. 제승당 제승당 (사적 제113호)의 역사적인 내용 충렬사가 이순신이 죽은 뒤에 지어진 이를테면 기념관 같은 것이라면, 한산도에 있는 제승당은 그가 통제사의 큰일을 맡으면서 손수 지휘하여 지은 집이다. 1593년 8월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 통제사를 제수 받아 한산도에 본영을 설치 하였을 때 지금의 제승당 자리에 장수들과 작전 회의를 하던 운주당(運籌堂)을 세웠다. 그러나 원균의 모함을 받아 서울로 떠날때 까지 삼년여덟달 동안 머물면서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던" 그곳은 1597년의 칠천량 싸움에서 우리 군사가 지게 되자 그때 경상 우수사이던 배설이 거기 비축되어 있던 쌀과 무기 따위를 왜적에게 넘겨 주지 않으려고 불을 지름으로써 잿더미로 변하였다. 정유왜란 때 폐허가 되어 버린 이곳에 제107대 통제사 조경(趙儆)이 1739년에 유허비를 세우면서 "제승당" 이라 이름 하였고 1976년 지금의 제승당과 충무사, 한산정, 수루 등을 새로 짓고 경내를 정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루에서 바다를 향하여 바라본 풍경 경내 풍경 통영대교 [統營大橋] 경상남도 통영시 당동과 미수동을 잇는 다리이다. 길이는 591m·폭은 20m이며 1998년에 완공되었다. 통영운하를 가로질러 세워진 다리로, 통영시 당동(當洞)과 미륵도(彌勒島)의 미수동(美修洞) 사이에 있다. 터미널 앞바다 계단으로 오르면 2층에 위치한 유람선 매표소를 만난다. 통영 미륵산 한려수도 케이블카 매표소에 닿았다. 부슬부슬 비는 내렸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운행이다. 매표 개시전 시운행중이다. 탑승객 100만을 돌파한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는 선로 1,975M로 도남관광지 하부 정류장에서 시작하여 미륵산 8부 능선에 위치한 상부 정류장까지 8인승, 캐빈 47대가 연속적으로 순환하며 관광객을 수송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길다는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 티켓 매입 번호순대로 탄다. 흐름이 빨라서 1시간에 1,000명도 가능하다는군요. 환경을 보호하고 승객들의 편안한 승차감을 위해 중간 지주를 1개밖에 설치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출발시와 중간지주에서 덜컥할땐 겁이 살짝 나기도 했다. 한국의 100대 명산중 하나인 통영 미륵산에 설치된 이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오르면 한려수도의 보석같은 섬들과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항, 이순신장군의 구국의 혼이 살아있는 한산대첩지등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고 아주 맑은 날에는 일본 대마도, 지리산 천왕봉, 여수 돌산도까지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올라간 날은 두터운 안개로 하늘의 경계도 안개속에 묻힌채 온통 희뿌옇게만 보였다. 케이블카 탑승장소이다.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 두터운 구름속을 지나 하늘로하늘로 오른다. 상부 종합안내판 해병대 통영상륙작전(海兵隊 統營上陸作戰)..해설판 글을 옮김 1950년 6월25일 남침을 개시한 북한공산군은 불과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8월 중순에는 포항,대구,마산방면으로 압박을 가하면서 최종목표인 부산을 향해 총공격을 시도하였다. 우리 국군은 미국을 위시한 유엔16개국의 지원을 받아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결사항전을 시도하면서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때, 마산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하던 북한군은 아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거제도를 통해 마산,진해,부산방면으로 진출을 기도하였다. 이를 위해 북한군은 8월15일 7사단 예하 증강된 1개대대(650명)을 투입하여 거의 무방비 상태에 있던 통영을 먼저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하였고, 아군 경찰병력의 소규모 저항을 무력화 시킨 뒤 8월17일 01:00에 통영 시가지를 완전 점령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8월16일 해군참모총장은 마산 진동리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해병대 김성은 부대로 하여금 거제도에 상륙하여 적을 격멸시키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 해군본부의 승인을 얻어 8월17일 해군함정의 지원을 받아 통영 동북단 장평리에 기습 상륙하였다. 상륙과 동시 삼봉산(246고지)을 점령한 김성은 부대는 8월18일 새벽 총공격을 개시하여 전술적 요충지인 원문고개와 망일봉(148고지)을 점령하고, 이어서 해군 함포사격과 공군 항공기의 지원을 받아 8월19일 새벽에는 여황산(178고지)을 점령한 후 동일 10:00시경 통영시가지를 완전 탈환하였다. 통영시내가 탈환되자 북한군 패잔병 200여명은 야음을 틈타 어선을 탈취하여 고성방면으로 도주하였다. 이후 한 달 동안 북한군은 9차례에 걸쳐 원문고개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하였지만 번번히 격퇴 당했으며, 마침내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적은 완전히 패주하게 되었다. 통영상륙작전을 통해 한국해병대는 적 사살 469명, 포로 83명이라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며, 아군 전사자는 19명에 불과하였다. 이 작전은 6.25전쟁중 최초로 실시된 한국군 단독의 상륙작전이자 공격작전으로 외신종군기자(UPI통신)로 부터 "귀신잡는 해병대(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란 찬사를 받아 한국해병대의 용맹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산대첩과 더불어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던 조국을 구한 또 하나의 승전의 역사로 후세에 길이 남을 것이다. 정상 관광을 마치고 하산길.. 구름위에서 신선으로 지내다 하산한다. 하늘전선에 대롱대롱 매달려 내려간다. 통영시가지가 안개에 덮혀 뿌옇게 보인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통영시가지를 가까이... http://hansol240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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