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00,000년 묵은 울진 성류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산 30번지, 나지막한 선유산을 맑디맑은 왕피천이 휘돌아 나가는 절경 사이에 자리잡은 성류굴(聖留窟)이 바로 그곳이다. 수많은 석순과 종유석이 1년에 0.4㎜씩 무려 2억5000만년 동안 치솟고 흘러내린 대표적인 석회암 동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허리를 90도로 숙여 높은 포복을 하다가, 엎드려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기도 하는 472m 동굴 탐험에 마음은 마냥 동심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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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류굴에 들어가 만나는 첫 번째 광장은 연무동, 당대 최고 엘리트 화랑의 훈련장답게 주위를 용과 거북이가 지킨다. 오작교 건너 2광장, 미륵불이 사시는 3광장, 3·1 기념탑이 있는 4광장을 지나, 보천태자가 있었다는 5광장 용신지(龍神池)가 나온다.
신비한 설화가 깃들어 있다. 약 1400년 전 신라시대, 5광장에서 보천태자가 수도에 열중하고 있을 때 그 앞에 ‘굴신(屈神)’이 나타난다. 굴신을 상대로 ‘다라니경’을 외우는 보천태자의 낭랑한 목소리가 성류굴 안에 울려 퍼지고, 그 순간 굴신이 교화되어 사라졌단다.
본디 설화라는 것이 완벽한 픽션(fiction)은 아니다. 설화는 행간 속에 어떤 사건이나 정책을 내포한 고도의 상징체계다. 때는 통일 직후인 신문왕 시절,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지방호족에 대한 통제가 느슨해졌던 시기다. 교화를 시킨 주체는 신라의 왕자요, 교화를 당한 대상은 지역의 토착신이며, 교화를 시킨 도구는 다라니경 즉 불교다. 답은 나왔다.
각 지방의 토착 신앙을 불교로 흡수하고 지역 호족들을 중앙에서 통치하려는 것, 궁극적으로는 불교의 전파를 통해서 왕권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당시 가장 중요한 국가정책이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보일 듯 말 듯 억겁의 연륜을 쌓은 성류굴만이 줄 수 있는 재미있고 독특한 교수방법이다. 역사는 원래 강요하고 외우는 주입식 교육을 하지 않는다.
>> 성류굴-그 울고 웃는 이야기
5광장 구석에는 선녀의 밀실도 있다. 깊은 속내까지 남김없이 보여주는 옥색 물에 신비스러운 동굴이 있어 어디선가 선녀가 목욕을 즐기고 있는 환상에 빠진다. 바로 그 옆 커튼이 쳐져 있는 동굴은 혹시 선녀가 옷을 갈아입는 탈의실은 아닐까? 에구머니! 바로 옆에서 나무꾼이 도사리고 지켜보고 있다. 가슴 아픈 ‘실화’도 전해온다.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일년 내내 15도 안팎의 쾌적한 온도에 완벽한 1급수인 왕피천의 깨끗한 물이 넘쳐나는 이 동굴에 울진 사람들이 몸을 숨겼다. 전쟁이 길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여겼겠지. 왜구들은 동굴 입구를 막아버렸다. 안에 갇힌 사람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다 끝끝내 죽었다. 훗날 동굴 곳곳에서 수습된 사람 뼈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단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큼지막한 석순의 모습이 영락없는 캄보디아 킬링 필드에 등장하는 해골탑이다. 석순인지 정말 왜란에 변을 당한 사람들의 것인지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천장을 보고 더 오싹해졌다. 대나무를 비껴 자른 날카로운 죽창들이 해골탑을 겨누고 있었다. 사람들의 한(恨)이 자라나는 석순과 종유석의 모습마저도 바꾸어 놓은 것일까?
>>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지하 금강산, 지옥동이 나오고 만물상이 펼쳐진다. 산호가 피어나는 여의동을 지나 돌꽃 사이로 아름다운 여인이 지나가는 음향동 옆으로 보물섬이 나타난다. 냉장고에 있어야 할 베이컨이 공중에 매달려 있고 할머니가 손주에게 젖을 먹인다.
통일기원탑이 시선을 잡아끈다. 2억5000만년의 세월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낸 통일기원탑, 땅에서 자라나는 석순과 하늘에서 내려오는 종유석이 닿을 듯 닿을 듯 만나지 못하고 있다. 남과 북이 그토록 갈망하지만 아직은 이뤄내지 못한 것처럼…. 언젠가는 서로 만나 튼튼한 돌기둥(石柱)이 되겠지!
[여/행/수/첩]
▶ 묵을 곳: 덕구스파월드 (054)782-0677 www.spa-world.co.kr, 벽산 덕구온천 콘도 (054)783-0811~3 www.dukkuspa.co.kr, 호텔 덕구온천 서울 (02)517-9286 울진 (054)782-0677, 백암관광호텔 (054)787-3500
▶ 먹을 거리: 울진 대(竹)게 굳이 무슨 말이 필요하리오? 2~4월의 요놈들이 가장 실하고 맛이 있는데 지금 맨 끝물이다. 당장 달려가서 제 철이 지나감을 아쉬워하는 대게를 만나는 것도 아주 좋을 듯하다.
▶ 교통: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코발트빛 바닷물에 기암괴석이 수를 놓아 사진기만 들이대도 작품사진이 나오는 길, 7번 국도다. 가고 싶으면 가도 좋고 서고 싶으면 서도 좋다. 국도 여행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환상의 도로다.
▶ 성류굴 관람 문의: 울진군청 문화관광과 www.uljin.go.kr, (054)782-1501, 785-6393, 성류굴 (054)780-2011, 관람시간: 08:00~18:00,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군인: 2000원, 어린이: 15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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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영계곡: 부처 형상의 바위가 연못에 비친 사찰 불영사에서 유래된 곳이라는 이 15㎞의 계곡은 그 깊이와 너비에 기암괴석과 시리도록 푸른 물에서 여타의 계곡들을 압도한다. 장엄하고 장쾌하다. 단 길이 구절양장이라 자칫 절경에 넋이라도 빠지면 위험할 수 있으니 운전 조심.
▶ 월송정: 관동팔경 중의 하나. 신라 화랑들이 심신단련을 위해 찾았던 명승지. 파란 동해 바다에 푸른 기상의 해송(海松)이 어울리고 싱그러운 솔 향기는 짭조름한 바다 내음에 어우러지니, 눈과 코가 두 번 상쾌해지는 곳이다.
▶ 덕구온천: 성류굴에서 25㎞ 삼척 방향으로 가다 부구에서 왼쪽길로 10㎞를 가면 울진군 북면 덕구리에 자연 용출 온천 ‘덕구온천’이 있다. 지하에서 뿜어나오는 펄펄 끓는 물이 장관이요, 2002년 태풍 루사로 훼손된 계곡을 복구하면서 세워 놓은 미국 금문교, 호주 하버 브리지, 서울 한강의 서강대교 등 12개 교량 모형 역시 볼만하다.
▶ 백암온천: 울진읍내에서 영덕 포항 방면 36㎞, 평해읍에서 우회전 17㎞.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 월송정과는 20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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