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길을 찾아서..

진주 유등 축제장을 다녀오고.. (10월1일~10월12일)

임미경 2011. 10. 5. 06:55

 

 

진주남강유등축제 유래

 

1592년 10월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 3800명에 지나지 않는 적은 병력으로,

진주성을 침공한 2만 왜군을 크게 무찔러 민족의 자존을 드높인 '진주대첩'을 거둘 때

성밖의 의병 등 지원군과의 군사신호로 풍등을 하늘에 올리며 횃불과 함께

남강에 등불을 띄워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저지하는 군사 전술로 쓰였으며,

진주성내에 있는 병사들과 사민들이 멀리 두고 온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이용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김시민 장군의 군사신호로,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의 도하작전을 저지하는 전술로,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두루 쓰였던 진주남강 유등은

1593년 5월 10만 왜군에 의해 진주성이 적의 손에 떨어지는 통한의 '계사순의'가 있고 난 뒤부터는

오직 한 마음 지극한 정성으로 나라와 겨레를 보전하고 태산보다 큰 목숨을 바쳐

의롭게 순절한 7만 병사와 사민의 매운 얼과 넋을 기리는 행사로 세세연년 면면히 어어져

오늘에 진주남강유등축제로 자리잡았다고한다.

 

 

 

진주성 전투를 등으로 표현..

 

 

 

길을 따라 가면서 대형 등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진주 촉성루 성곽이 뒤로 있는데 잘 보이지는..

유물 위주의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어린시절 남자아이들이 많이 하고 놀았던 말뚝박기

 

 

강강수월래를 하는 모습도..

 

 

 

왜군들의 침입을 막고 있는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재연한 것..

 

 

 

나라를 지키는 선조들의 늠름한 모습을 표현한 곳

 

 

 

옛날 상상의 동물들입니다.

실제로 보면 크기가 제법 크다

 

 

 

 

 

 

진주 남강 옆으로 이렇게 저마다의 소원들로 가득찬

홍동터널이 길게 이어져 있다.

 

 

 

 

 

 

 

 

임진왜란당시열세였던 진주성의 군사들이 군사수가 많아 보이고자

불을 붙인 등을 남강에 띄워 군사수가 이렇게 많음을 보여주고자 했던 데서

유래한 유등측제

진주성 촉석루 바로 앞을 흐르는 남강에 온갖 모양의 등이 화려하게 띄워져 있어 눈길을 사로 잡는다.

태권 V부터시작하여, 논개등, 용등, 잉어등,십장생등 등등등50여개가 넘는 테마등이 출동해 주셨다

개인적으로 세번째
날짜를 챙겨 꼭한번은 가보라고 추천할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