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기업인으로서 박태준은 대한민국 근대화 역사에서
박태준은 일제 강점기인 1927년 경상남도 동래군 장안면(현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임량리에서
박 명예회장의 부모는 태몽으로 달음산타는 산)이 옹트림하는 꿈을 꾸고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박태준은 만 6세에 어머니와 일본으로 건너가 해방 직전 와세다대학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박태준은 무공훈장을 3개나 받으며 앞으로 인생을 살아갈 큰 신념을 갖게 된다.
전후 수습에 여념없던 54년 박태준은 평생의 반려를 만났다.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한 24살의 정옥자씨와 맞선을 본 것이다.
이후 박태준은 5·16 군사쿠테타에는 직접 가담하지 않았지만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테타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박 명예회장은 군 예편 후에는 경제인으로 변신해 1964년 대한중석(현 대구텍) 사장으로 임명되며
일본 미쓰비시 종합연구소는 1991년 포항제철 성공의 첫번째 원인으로
박태준은 포철을 창업 25년이란 짧은 기간에 세계 굴지의 철강업체로 키운 한국철강업계의 명실상부한 대부이자
그러나 설립 당시부터 정치 외풍으로부터 포철을 지키는 울타리 역할을 해 온 그는 김영삼 정부와 불화로
92년 10월 5일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은 사퇴서를 제출했다.
박태준은 김영삼 집권 이후 포철 협력사들로부터 3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97년에는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여 총재가 되었고 김종필과 함께 김대중의 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선을 지원하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장옥자씨와 진아·유아·근아·경아·성빈씨 등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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