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로 미국 여행을 하다보면 가장 많이 만나는 풍경이 단조로운 평원과 황량한 사막이다.
그 같은 자연환경 자체는 우리에게 한없는 권태와 외로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렇지만, 하나의 패러독스랄까, 우리는 오히려 그 속에서 도시에서 느끼는 인간소외를 치유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998년 독일에서 제작된 된 영화 바그다드 카페(Out Of Rosenheim / Bagdad Cafe)에서
여감독 퍼시 애드론(Percy Adlon)은 페미니즘 성향의 독특한 플롯과 두 여자 주인공의 인상적인 연기를 통해서 이를 잘 그려내고 있다.
독일의 시골뜨기 재스민(Jasmin: Marianne Sagebrecht)은 미국을 일주하는 관광여행을 한다.
라스베가스로 가는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의 길게 뻗은 고속도로 상에서 남편과 심한 말다툼을 한 재스민은 그만 차에서 내려버린다.
무거운 트렁크를 끌며 사막을 헤매던 그녀는 마침내 한 허름한 카페를 발견하고 그리로 찾아든다.
그 곳에서 처음 만난 카페 여주인 브렌다(Brenda: CCH Pounder)는 마침 무능한 남편을 방금 내쫓고 나서 울고 있는 참이었다.
그 곳에는 이렇듯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그녀와 함께, 피아노 치기를 좋아하는 아들.
말썽꾸러기 틴에이저인 딸. 전직 할리우드 간판장이 루드 콕스,
바그다드 모텔에 묵어가는 남자들에게 문신을 그려주는 데니,
그리고 커피를 만들어 주는 바텐더 등
도시의 변방으로 밀려난 몇몇 소외당한 사람들이 이미 깃들어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하루하루 반복되는 따분한 일상을 지겹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카페 손님에게 우연히 마술을 보여준 것을 계기로 용기를 낸 재스민은 계속 마술공연을 하기로 마음을 정한다.
그로 인해 카페는 사람들로 붐비게 되고, 재스민은 그렇게 서서히 브렌다 가족의 일원이 되어간다.
여권 문제로 재스민이 독일로 돌아가자, 북적했던 카페는 다시 쓸쓸한 옛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다.
브렌다가 여느 때처럼 문 앞에 앉아 시름에 잠겨 있던 어느 날,
흐릿한 시야 조 너머로 들어오는 재스민의 모습을 발견하고 맨발로 뛰어나가 그녀를 맞이한다.
바그다드 카페에는 다시 예전처럼 사람들로 북적이게 되었다.
그 동안 재스민을 지켜보던 루드 콕스도 정식으로 청혼하고, 브렌다와 재스민의 삶은 바그다드 카페에서 계속된다.
영화는 바그다드 카페라는 삭막한 공간을 중심으로 독특한 개성을 지닌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로 이루어진다.
비현실적 환상을 좇아 문신을 새기던 트럭 운전사들이 보다 현실적인 즐거움인 마술에 취하게 되자,
데니는 그 변모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또 다른 소외를 맞고 만다.
떠난 후에 숨어서 부인 브렌다를 시종일관 지켜보는 남편은 가족이 있는 일상의 공간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현대인들의 한 일상적 단면을 보여준다.
플롯의 중심 에피소드인 루드 콕스와 재스민의 사랑은 메마른 환경과
소외된 인간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아름다움과 환희를 듬뿍 담고 있다.
우리는 보다 동적인 여행을 통해서 곧 잘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꾼다.
하지만 바그다드 카페와 같이 지극히 제약되고 정적인 공간 속에서도 능히 아름다움과 살만한 가치를 만들어 갈 수도 있는데,
그것은 바로 타인에 대한 끝없는 이해와 사랑을 배풀 줄 아는 마음을 통해서이다.
이 영화는 사람이 소외에서 벗어나려면, 되도록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도 무조건 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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