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길을 찾아서..

(대한다원, 소록도, 낙안읍성)

임미경 2010. 6. 13. 16:06

대한다업 (주)보성다원을 관광농원으로 개방한  곳으로 1957년에 시작해
                                                               반세기를 내다보는 내력있는 차 관광농원이다.
                                               대한다업에서는 1959년 해발 350m 보성 오선봉 주변에 대단위의 녹차밭을

           조성하고 있으며 현재 연간 녹차 120톤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대한다업(주)는 봉산리에 있는 보성다원 제 1다원과 회천리에 있는 제 2다원이 있으며,

제1다원은 국내 유일 차 관광농원으로 지정운영되고 있다.

연간 다녀가는 관광객수도 100만명이 넘고 각종 CF촬영과, 영화촬영지로도 유명하며,

영화 "선물"의 촬영 장소였던 울창한 삼나무숲 오솔길로 걸어오르는 차밭은 30여만 평

규모의 대단위 차농원으로 장관을 이뤄놓고 있다.

2003년 7월에는 KBS드라마 '여름향기'가 촬영되기도 하였다.

 

등산코스 : 5만평의 녹차밭 산책코스

 
대한다원에서 자동차로 조금 내려가다보면 보성다원 전망대가 보인다(전망대에서 본 경치)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 한하운
                              

    아버지가 문둥이올시다
    어머니가 문둥이올시다
    나는 문둥이 새끼올시다
    그러나 정말은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 사이에
    꽃과 나비가
    해와 별을 속인 사랑이
    목숨이 된 것이올시다.


    세상은 이 목숨을 서러워서
    사람인 나를 문둥이라 부릅니다.


    호적도 없이
    되씹고 되씹어도 알 수는 없어
    성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도 될 수는 없어
    어처구니없는 사람이올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나는 정말로 문둥이가 아닌
    성한 사람이올시다.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했던 소록도
 
 
 
 
 
 
 
 
 
 
 
 
 
 
 
 
 
 
 
 
 
 
 
 

 

 


낙안읍성은 대개의 성곽이 산이나 해안에 축조되었는데 반해, 들 가운데 축조된 야성(野城)으로 외탁(外托)과 내탁(內托)의 양면이 석축으로 쌓여 있는 협축(夾築)으로 이루어졌다는 큰 특징이 있다. 이곳 낙안 평야지에 있는 읍성으로서 연대를 살펴보면 조선 태조 6년(1397년)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양혜공(襄惠公)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고 왜구를 토벌하였다. 그 후 인조 4년(1626년 5월 ∼ 1628년 3월) 낙안 군수로 부임한
충민공(忠愍公)임경업(林慶業) 군수석성(石城)으로 개축하였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조선왕조실록 세종편에 의하면 세종6년(1423) 전라도 관찰사의 장계 내용에 "낙안읍성이 토성으로 되어 있어 왜적의 침입을 받게 되면 읍민을 구제하고 군을 지키기 어려우니 석성으로 증축하도록 허락하소서" 하니 왕이 승낙하여 세종9년(1426) 되던 해에 석성으로 증축하기 시작하였다고 하는 이설이 있다.

성곽의 길이는 1,410m, 높이 4∼5m, 넓이 2∼3m로서 면적 41,018평으로 성곽을 따라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이 있었으나 북문은 호환(虎患)이 잦아 폐쇄하였다고 전하여 오고 있다. 동문은 낙풍루(樂豊樓) 남문은 쌍청루(雙淸樓) 또는 진남루(鎭南樓)라고 하고 서문은 낙추문(樂秋門)으로서 성문 정면으로 ㄷ자형 옹성(瓮城)이 성문을 외워 감싸고 있다. 여장엔 활을 쏠 수 있도록 사방 1尺정도의 총안(銃眼)=사구(射口)가 있고 이 총안 역시 근총(近銃)과 원총(遠銃)으로 나누어 있다. 또 여장이 타구(朶口)로 나뉘어 있고 성곽을 따라가면凸 형의 성곽이 있는데 이는 치성(雉城)이라고 한다. 당초 6곳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4곳만 남아 있다. (일부 복원함) 이 치성은 초소(망루) 역할을 했던 곳으로 좌우로 침입하는 적의 동태를 살피기도 하고 성벽을 타고 오르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축조되었다.

그 동안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특히 6.25사변 이후 많은 훼손을 가져왔으나, 1983년 6월 14일 성과 마을(동내리, 남내리, 서내리)이 국내 최초로 함께 사적지(사적 제302호)로 지정이 되면서 1984년부터 3∼4년에 걸쳐 복원작업이 완료되었다. 여장은 동문(낙풍루), 남문(쌍청루) 주변만 복원된 상태이고, 서문(낙추문) 옆 성곽에도 여장이 복원될 계획으로 있다.

2002년 10월 31일 전라남도 문화재위원회는 한국의 전통적인 시골마을의 정취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순천시 낙안면 낙안읍성 마을을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으로 신청하기로 결정하고 낙안읍성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낙안 읍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