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변 벼랑 위에 있는 이 누각은 진주성의 남쪽 장대(지휘하는 사람이 올라서서 명령하던 대)로서 장원루라고도 한다.
고려 공민왕 14년(1365)에 세운 후 7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로 사용하였고, 평상시에는 과거를 치루는 고시장으로 쓰였다.
현재의 누각은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60년 진주고적보존회에서 재건한 것으로 앞면 5칸·옆면 4칸이다.
《진양지(晉陽誌)》에는 고려 때 김중선(金仲先) 등이 진주성 수축시 신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김주가 영남루를 중건할 때 촉석루를 본보기로 하였다고 되어 있다. 촉석루의 누기(樓記)에는 조선 초 목사 권충과 판관 박시결(朴施潔)이 중건하고 하륜(河崙)이 누기를 지었다고 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논개(論介)가 몸을 던져 순국한 곳으로 유명하다.
강 건너서 바라본 촉석루모습
진주성 안쪽에서 바라본 촉석루.
촉석루는 진주의 상징이자. 영남 제일의 명승이다. 진주성 남쪽 석벽 위에 우뚝하여, 웅장한 위풍은 진주성의 위상을 대변하고 있다. 일명 장원루(壯元樓) 또는 남장대(南將臺) 라고도 한다. 고려조 고종28년(1241) 진주목사 김지대(金之岱:1190 - 1266)가 창건하고, 충숙왕9년(1322) 목사 안진(安震: ? - 1360)이 재건하였다. 우왕5년(1379)에는 해구의 침략으로 불탄 것을, 조선조 태종13년(1413)에 목사 권충(權衷)이 중건하였고, 성종22년(1491)에는 목사 경임(慶 )이, 선조16년(1583)에는 목사 신점(申點)이 중수하였다. 선조26년(1593)에는 왜적의 침략으로, 진주성이 함락되는 와중에 또 불탄 것을, 광해군10년(1618)에 병사 남이흥(南以興)이 중건하였다.
경종4년(1724)에는 병사 이태망(李太望)이 중수하였고, 1950년 6.25전쟁으로 또 불탄 것을, 1960년 진주고적보존회에서 중건하였다. 하륜(河崙: 1347 - 1416)의 「촉석루기」를 비롯, 많은 시인묵객의 시서화가 오늘에전한다고 한다
남강쪽에서 본 모습.
야경모습..
우리나라 3대누각을 얘기할때, 진주 촉석루와 밀양 영남루 그리고 평양 부벽루 또는 남원 광한루를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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