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때 숨진 어느 무명용사의 무덤인 듯
옆에는 녹슨 철모가 딩굴고 있었고,
무덤 머리의 십자가 비목(碑木)은 썩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보였습니다.
▲ 비목
녹슨 철모, 이끼 덮인 돌무덤,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새하얀 산목련,
화약 냄새가 쓸고 간 깊은 계곡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
그는 돌무덤의 주인이
자신과 같은 젊은이였을 거라는 깊은 애상에 잠깁니다.
4년 뒤 당시 동양방송(TBC) 에서 일하던 한명희 PD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장일남 작곡가(한양대 음대 명예교수. 2006년 9월 별세)는
가곡에 쓸 가사 하나를 지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 '비목'의 작곡자 故장일남 교수
돌 무덤과 비목의 잔상이 가슴속에 맺혀있던 한명희 PD는
즉시 펜을들고 가사를 써 내려갔습니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 넋을 기리는
"비목"의 가사는 이렇게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1967년에 만들어진 이 노래는
70년대 중반부터
'가고파', '그리운 금강산'과 더불어
한국인의 3대 애창곡으로 널리 불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가곡 "비목" 의 고향인 강원도 화천군에는
전쟁과 분단의 흔적들이 아직도 이곳저곳에 서려 있습니다.
6.25 당시
화천댐을 놓고 벌인 치열한 공방전으로 붉게 물들었던 파로호는
지금 신록 속에 푸르기 그지 없고,
전두환 군사정권시절 댐 건설의 필요성을 놓고 논란이 일었던 평화의 댐은
민통선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댐 옆에는 가곡 "비목"을 기념하는 '비목공원'이 들어서 있습니다.
▲ 평화의 댐
파로호의 원래 이름은
호수모양이 전설의 새 대붕(大鵬) 을 닮았다고 대붕호(大鵬湖)였으나,
6.25 전쟁 직후 이곳을 방문했던 이승만 대통령이
1951년 화천댐 공방전에서
국군이 중공군 3개 사단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둔 것과 관련하여,
"적을 격파하고 포로를 많이 잡았다" 는 뜻으로
"파로호(破虜湖)" 라는 새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파로호는 1944년, 화천댐 건설로 생긴 인공호수로
산 속의 바다라고도 불리는데,
호수에는 쏘가리, 잉어 등 70여종의 민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 파로호
파로호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는
화천읍에서 평화의 댐으로 가는 460번 지방도 오른쪽에 있습니다.
파로호 휴게소에 차를 대고 5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비목공원은 1998년, 가곡 '비목' 을 기념해서 만들었습니다.
산비탈에 돌로 한반도 모양의 단을 쌓았고
곳곳에 돌무덤과 비목이 세워져 있습니다.
▲ 비목공원
주차장 입구에 '비목 노래비'가 서 있어
방문자들은 누구나 한번씩 그 앞에 서서 가사를 되새겨 본다고 합니다.
현재 비목공원에는
기념탑 외에 철조망을 두른 언덕 안에
녹슨 철모를 얹은 나무 십자가들 이 십여 개 서 있어
한국전쟁이라는 민족비극의 아픔을 되새기게 해줍니다.
▲ 비목공원 비목 노래비
화천군에서는 매년 6월 3일부터 6일까지
이곳 비목공원과 화천읍내 강변에 들어서 있는 붕어섬 등에서
'비목 문화제'를 개최합니다.
진중가요, 시 낭송 등으로 짜여진 추모제, 비목깎기 대회,
주먹밥 먹기 대회, 병영체험,
군악 퍼레이드 등이 나흘동안 펼쳐진다고 합니다.
공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산자락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렸고
그 사이로 북한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근래에 호랑이 발자국이 발견됐다고 해서
주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조국을 위해 희생한 비목의 주인공과
많은 선열들의 숭고한 넋을 생각하며
'비목'의 가사를 다시 되새겨 봅니다.
가곡 '비목'은
적막에의 두려움과 전쟁의 비참함,
그리고 그 때문에 더욱 간절한 향수 등이
서정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는 노래입니다.
1.초연(硝煙)이 쓸고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세월로 이름모를 이름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
2.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달빛타고 흐르는 밤
홀로선 적막감에 울어지친 울어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되어 쌓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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