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한집에 텔레비젼 두대 이상 있는 집이 흔해졌지만, 2-30여년
전만해도 텔레비젼이 재산 목록 1위에 오를 만큼 귀하던 시절이 있었
다. 우리집에도 광고속 아래쪽에 나온 모델과 비슷한 텔레비젼이 있었
다. 우리집이 시골이긴 하지만 동네에서 첫번째로 흑백 텔레비젼 을
사는 바람에 밤이면 동네 어른 아이들 할 것 없이 모두 텔레비젼 연속
극 보러 놀러오곤 했다고 어머니가 말씀 하신 적이 있다.
지금은 폭력과 성이 난무하고 가족간의 대화마져 단절시키는 악역을
이 텔레비젼이란 놈이 도맡아 하고 있지만 그래도 한때는 이웃간에
정을 느끼게 했던 바보상자였다.
기억한다. 물체 주머니 안에는 돌, 나무토막, 단추, 병뚜껑, 조개껍데
기, 심지어 나사와 볼트까지 다양한 물체(?)들이 들어 있었다.
전까지 국내 매출 1위였다.
김일과 최고의 라이벌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끼가 펼쳤던 명승부전은
지금도 뇌리에 남아있다. 안토니오 이노끼는 은퇴후 인기를 내세워
일본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카톤 팩이란 이름의 비닐코팅 종이팩 우유이 보편화된 것은 70년대
후반 학교우유급식이 시작되면서가 아닌가 싶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두손에 담아 드려요~~ 오~~오 오! 오란씨~~
둘리 작가 김수정에 버금갈 만큼 인기가 높았다.
독고탁의 작가 이상무, 로봇 찌빠의 작가 신문수도 기억에 남는다.
차원에서 버스 안내양 누나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안내양의 주 업무
는 차안에서 버스 요금을 정산하는 일이었지만, 그 외에도 만원버스
에 승객을 밀어넣는 푸쉬맨의 역할과, 다음 행선지를 마이크로 안내해
주는 역할도 했었다. 참 피곤하고 힘든 직업이었는데,... 그들이 있었기
에 지금의 우리가 있지 않나 싶다....
었겠죠? 아마도?
나폴레옹의 말탄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국산 양주 나폴레옹과 함께...;
"수가 몇개일까? 혹시 양이나 가가 있으면 어쩌지..." 하며,
두근거리는 가슴 억누르며 통지표를 받아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은... > 그때 그시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표로 보는 역대 대통령 (0) | 2011.04.21 |
---|---|
국민 학교의 추억 (0) | 2011.04.21 |
그리운 그시절 (0) | 2011.04.19 |
막걸리가 있는 풍경 (0) | 2011.04.10 |
70년대 MBC 추억의 프로그램들... (0) | 2011.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