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그때 그시절

사라져 버리는 지난 세월의 추억들

임미경 2010. 8. 30. 02:07

사라져 버리는 지난 세월의 추억들..... !!

 

 


<니나놋 집(일명 대폿집)>
어려웠던 시절 해가 서산에 떨어지고 땅거미가 짙어질 무렵이면

생활과 일에찌든 술 꾼들이 피곤 과 삶의 시름을 달래기 위해

삼 삼 오 오 어울려 찾아 들던 이른바 "니나놋 집" 이 번성 했던때가 있었다.



<금줄>
남아 선호 사상이 팽배 하던 시절 금 줄에 걸린 붉은 고추는

 행인 들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할 만큼 스스로 당당함 을 뽐냈다.
빈부 격차나 신분의 고하 지역을 가릴것 없이 새끼줄에

 빨간 고추와 숯 솔가지가 매달렸으면 아들이고 솔가지 와 숯만 걸리면 딸이었다.


<이> 
이 들이 살이 통통 찌도록 우리 모두를  괘롭였던 추억을 갇고있으며
어렵던 어린 시절에 이 징그러운 미물이 목숨 걸고 날라다 준 인정과 우애의
교감 조차도 지금은 온 몸을 활보하던 스물거림의 추억과 함께 잊혀져가고 있다.


 

<헌방> 
학창시절 헌책방에 얽힌 추억을 하나쯤은 간직하고있다.
미팅으로 만난 여학생과 대화를 위해 고전 문학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냈던 곳,
멀쩡한 교과서나 사전등을 팔아 군것질을 하기위해 찾았던곳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새책값으로 헌책을 구입하고

나머지는 군건질이나 미팅 비용에 슬쩍했던 일등.....

<뻥튀기 장수>
먹을 것이 흔치 않았던 60∼70년대의 풍경이다.

당시는 주전부리 라고 해봐야 고작 찐 고구마, 감자, 옥수수 등이 전부였다.
봄부터 여름까지 과일 등 으로 입을 달래던 꼬마들은 날씨가 선선해 지면서

주전 부리를 할  먹거리가 별로 없어 심심하였다.  

이런 가운데  뻥튀기 장수라도 올라치면 최고의 군것질 거리가 생기는 것이었다.

물론 "눈깔사탕"과 같은 것도 있었지만  큰 돈 들이지 않고 먹을 수 있는것이  뻥튀기였다.


<측간>
결코 아름답거나 향기롭지 못했던 것들도 현실이 탈색되면 향수의 대상이 된다.

"측간"(厠間)이란 말에는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가려주는 시간의 먼지가 소담하게 쌓여 있다.

 


<흑백 텔레비죤>
시골에 처음 흑백 T V 가 들어온 것은 60 년대 말에서 70 년대 초.
값이 비싸  대개 한 동네  통 틀어 제일 잘사는 부자 집  한 집에만 T V 가 있기 마련 이었다.

라디오 보다 몇 백배나 신기하고 재미있어 저녁마다 그 부자집 마당은

T V 를 보러온 마을 사람들로 꽉 차곤 했다.
T V 를 가진 부자 집의 "TV 유세" 는 대단했으며 이들은 흑백 T V 를 보물 단지 모시듯 했다.

낮에는 자물쇠를 채워 놓은 집이 흔했다


<꽃상여>
기억 나시지요...  아득한 들길 멀리 너울  너울 꽃  상여가 떠나고  

마침내는 "어 화 널   어 화 너 얼   어화리 넘 자  어 화 너얼" 

 애잔한 상두꾼들 소리조차 가물가물 아지랭이에  먹힐 즈음이면 

 뜸부기 우는 들 가운데 서서 까닭없이 눈물을 훔 쳤던 콧 잔등 싸 한 추억이.....

 


<요강>

돌이켜 보면 요강 만큼 우리 삶의 흔적을 많이 함축한 것도 흔치않았습니다.
염치(廉恥)가 중했던지라 낮에는 딴전 부리듯 마루 한쪽에 엎어두지만

부엌일 마친 어머니가 요강 단지를 방 한쪽 구석에 들여놔야 비로소 일과가 끝났습니다.

 바로 뼈빠지는 노동의 대 미(大尾)에 요강이 있었던 것이지요.

 

 

<학교종>

조용하고 아늑한 시골 교정에 맑고 은은하게 울려 퍼지든 학교  종소리.  

땡~ 땡~ 땡~~ 그 소리가 그립다.

 

<고무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애용되던 고무신이

요즘은 특별한 때 특별한 곳에서 쓰는것으로 인식될 만큼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시골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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