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아름다운 글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임미경 2012. 5. 14. 07:17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먼 곳에 두고 왔어도 사랑이다.
눈 앞에 당장 보이지 않아도 사랑이다.
어느 길 내내, 제 혼자서 부르며 왔던 그 노래가,
온전히 한 사람의 귓전에 가 닿기를 바랐다면,
무척은 쓸쓸했을지도 모를 외로운 열망같은 기원이 또한 사랑이다.

고개를 돌려, 눈길이 머물렀던 그 지점이 사랑이다.
빈 바닷가 곁을 지나치다가,
난데없이 파도가 일었거든 사랑이다.
높다란 물너울의 중심 쪽으로 제 눈길의 초점이
맺혔거든... 이 세상을 달려온 모든 시간의 결정만 같은 한 순간이여.
이런, 이런, 그렇게는 꼼짝없이 사랑이다.

오래전에 비롯되었을 시작의 도착이 바로 사랑이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휩쓸려, 손가락 빗질인양 쓸어 올려 보다가,
목을 꺽고 정지한 아득한 바라봄이 사랑이다.

사랑에는 한사코 긴한 냄새가 배어 있어서,
구름엔듯 실려오는 향취만으로도 얼마든지 사랑이다.
제 몸이 꿰어 있어서, 갈 수 없어도 사랑이다.
魂인들 그 쪽으로 향하는 그 아픔이 사랑이다.
등 너머에 있어도 사랑이다.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먼 훗날에도 그대가 거기에 서 있기를

어딘가엔 폭설이 내리고
어딘가엔 비가 내리고
어딘가로부터 뻗어온 강물은 뜻 모를 소리가
겹치는 여울을 돌고 있겠거니

사람으로 와서 한 계절 또 한 계절 굽이마다
꽃피고 풀잎 돋더니
땡볕이 푹푹 쪄대더니
바람이 갈겨 쓴 마른 갈피들 우수수 흩날리더니
다시 쩡쩡 살얼음이 기웃거리는 겨울입니다

누군가에게 내어줄 아랫목이 없다면
아랫목에 묻어둔 한 공기, 이불 밑에 익는 저녁이 없다면
사람으로 와서 사는 일도 쓸쓸하겠습니다

돌아눕기가 더 많았던
이런저런 이유로 보내야 할 일이 많았던
그날 다음 그날로 흘러온 길이 이마로 번져
얼굴에도 결이 생기니
저물기로 작정한 일도 어제입니다
겨울은 유난히 모여 살기가 좋은 때라서 이엉을 엮어 덮은 띳집,
방고래 절절 끓는 화롯가의 날을 불러들여
군밤 굽듯 별들 화로에 앉히고 이리저리 굴려보는 날이겠습니다

오래전 황제는 불로, 불로, 그 불멸의 약초를 애타게 구했으나
아프다, 아프다, 살이 썩어갔으니 불로란 애초에 마음이 잡아당겨
서둘러 가는 일이겠습니다
어느 비탈엔 산수유 필 자리를 다듬어
눈이 내리고
한순간 따습고 아린 날에 모여
아무런 약초 없어도 꼬깃꼬깃 쪽지를 접듯 달력을 접는 날이겠습니다

먼먼 날에도 아득한 들녘 끝
저녁이 시린 발로 서 있는 동구 밖 느티나무
함박눈 껴입는 날
희미하고 바랜 추억 끝에라도 외등이 멀리 내다보는 그 먼 밖에
환한 햇살 내리쬐며 서 있기를...